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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그 너머/세로로 긴 나라들

세로로 긴 나라들의 기후와 농업 패턴

by 어웨어12 2025. 4. 8.

– 위도 차이가 만든 다층적인 자연환경

국가의 형태는 단순히 지도 위에서의 모양을 뜻하지 않는다. 특히 국토가 남북으로 길게 뻗은 국가일수록, 그 내부에는 하나의 나라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기후적 다양성과 생태계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 차이는 단지 날씨가 다르다는 수준을 넘어서, 농업의 방식과 작물 구성, 지역 경제의 유형, 생존 전략과 정책 방향까지도 전혀 다른 형태로 나뉘게 만든다. 칠레, 노르웨이, 베트남은 모두 세로형 국토를 가진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이들 국가는 저마다 다른 위도대에 속해 있지만, 공통적으로 위도 변화에 따라 여러 기후대를 품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국 내에서 매우 다양한 자연환경과 농업 패턴을 형성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세로형 국토가 가진 기후의 다양성과 그로 인한 농업 전략의 차별성에 대해 세 나라를 중심으로 비교해본다.

 

 

1. 세로형 국토가 다양한 기후를 품는 이유

지구상의 기후는 무엇보다 ‘위도’에 의해 결정된다. 태양의 고도와 일조량은 위도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이로 인해 기온, 강수량, 계절 패턴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세로형 국토는 위도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국가 내부에 여러 개의 기후대가 공존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한 나라 안에서 북쪽은 사계절이 있는 냉대기후, 남쪽은 일년 내내 더운 열대기후일 수도 있다. 또한 지형과 고도의 차이, 해류와 계절풍 등 대기 순환 요소가 겹치면서, 동일한 위도에 있는 지역이라 해도 기후는 더욱 복잡하고 세분화된 형태를 띠게 된다. 이러한 자연 환경은 결과적으로 해당 국가의 농업 형태와 자원 활용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2. 칠레 – 사막과 포도밭, 빙하와 연어 양식이 공존하는 나라

칠레는 남위 17도에서 56도까지 뻗어 있는 매우 긴 나라로, 위도 범위만으로도 북반구의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를 포함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위도 변화는 칠레 내부에 세 가지 뚜렷한 기후대를 만들어낸다. 가장 북쪽에는 아타카마 사막이 위치해 있으며,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 중 하나로 손꼽힌다. 연평균 강수량이 1mm 미만일 때도 있을 만큼 극도로 메마른 이 지역에서는, 수분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선인장류나 포도 재배가 이루어진다. 또한 광산 자원이 풍부해 광업 중심의 산업 구조가 발달해 있다. 중부 지역으로 내려오면, 기후는 점차 지중해성 기후로 바뀐다. 이곳은 연중 온화하고 비옥한 밸리가 발달해 있어, 포도, 과일, 곡물 등의 농업이 집중되는 지역이다. 칠레의 와인 산업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도 이 지중해성 기후 덕분이다. 가장 남부 지역은 온대 해양성 기후로, 강수량이 풍부하고 기온은 낮다. 이 지역은 숲과 초지, 호수와 피오르 해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제품 생산, 소 사육, 연어 양식, 목재 산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이처럼 칠레는 하나의 국가 안에서 사막, 지중해, 온대우림까지 모두 공존하고 있으며, 각 지역은 서로 다른 산업과 작물에 특화되어 있어 ‘3개의 나라가 하나에 있는 농업 국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3. 노르웨이 – 북위 70도에서도 살아남는 생존형 농업

노르웨이는 북위 58도에서 71도까지 국토가 뻗어 있으며, 지구상에서 사람이 거주하는 가장 북쪽 국가 중 하나다. 그러나 이 나라는 단순한 추운 나라가 아니다. 노르웨이 남부는 해양성 냉대기후로, 여름에는 비교적 온화하고 겨울은 유럽의 고위도 국가들에 비해 덜 혹독하다. 이 지역에서는 감자, 곡물, 채소 재배가 가능하며, 일부 과일 농장도 운영되고 있다. 중부와 북부로 올라갈수록 기후는 점차 냉대 또는 한대 기후로 변화하며, 여름은 짧고 겨울은 길어진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대규모 경작이 어렵기 때문에, 목축 중심의 생존형 농업이 주를 이루며, 소규모 비닐하우스나 실내 재배, 온실 농업, 자동화 축사 등이 적극 활용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노르웨이 남부 해안 지역이 북위 60도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북대서양 해류의 영향을 받아 유럽에서 가장 따뜻한 고위도 농업 지대 중 하나로 평가된다는 점이다. 기후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기술 의존도도 높아서, 지붕 온실, LED 광원 기반 농법, 재생 에너지 농장 등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노르웨이는 기후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기술 혁신으로 돌파하고 있는 국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4. 베트남: 열대에서 아열대까지 이어지는 벼농사 강국

베트남은 북위 8도에서 23도까지 뻗은 국토를 가지고 있으며, 국토 전체가 열대와 아열대 기후에 속한다. 기후 자체는 따뜻하고 비가 많아, 농업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지닌 나라다. 북부 지역인 하노이는 아열대 기후로, 사계절이 존재하고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선선해진다. 이 지역은 벼농사를 중심으로 하되, 기온과 강수량의 변화를 고려해 1기작 또는 2기작 벼 재배가 이루어진다. 중부 지역은 고온다습한 기후를 가지며, 태풍의 영향을 자주 받는다. 이곳에서는 감귤류, 고구마, 커피, 후추 등 특용작물이 주로 재배되며, 기후의 변덕스러움에 대비한 복합 농업 방식이 발달했다. 남부 지역인 호치민과 메콩 삼각주는 열대 몬순 기후로, 연중 기온 변화가 거의 없고 비가 많이 내린다. 이 지역은 벼농사 2~3기작이 가능할 정도로 생산성이 높고, 망고, 바나나, 두리안 등 열대 과일 재배도 활발하다. 또한 메콩강과 홍강 같은 대형 삼각주를 기반으로, 계단식 논(테라스 농업)도 고산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베트남은 기후와 지형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세계 3위의 쌀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식량 자급률뿐 아니라 농산물 수출 경쟁력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5. 기후가 만든 농업 전략 – 세 나라의 공통점과 차이점

이 세 나라는 서로 다른 대륙, 문화, 위도대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토가 세로로 길다는 공통점을 통해 기후 다양성과 농업 다층성이라는 유사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칠레는 사막에서부터 빙하까지 이어지는 기후의 폭을 바탕으로, 지역별 특화된 농업과 수산업이 발달했다. 노르웨이는 기후적 한계를 기술력으로 보완하며, 고위도에서도 자급 가능한 농업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베트남은 기후적 이점을 극대화해, 다기작 벼농사와 열대 과일 산업으로 식량 생산력과 수출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이처럼 세로형 국토는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후의 다양성은 곧 작물의 다양성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국가 농업의 지속 가능성과 회복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다만, 이런 다양성은 물 자원 불균형, 자연재해, 지역 간 생산 격차라는 또 다른 과제도 동반한다. 세 나라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 다양성을 위기로 만들지 않고, 기회로 전환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세로로 긴 나라들의 기후와 농업 패턴
노르웨이 온실


 

 

세로형 국토는 하나의 땅에 여러 생태계를 담는다

국토가 세로로 길다는 것은 그 나라가 다층적인 생태계를 한 몸 안에 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대의 차이는 농업의 방식과 전략, 식량 자원의 분포, 수출 품목의 구조, 더 나아가 문화와 생활 방식까지 영향을 미친다. 칠레의 와인과 연어, 노르웨이의 실내 농업과 유제품, 베트남의 쌀과 열대 과일은 단순한 작물이 아니라, 각 나라가 기후와 공간의 조건 속에서 선택하고 만들어낸 생존의 해답이다. 세로형 국토는 단순히 불편한 형태가 아니다. 그 안에는 자연의 다양성이 선물처럼 담겨 있으며, 그 다양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농업 전략과 경제 구조는 전혀 다른 길을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