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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철학자

고르기아스 속 도발적 논리, 아름다움과 수치심을 함께 본 고대 철학자 칼리클레스

by 어웨어12 2025. 7. 14.

칼리클레스의 등장, 플라톤과의 치열한 대립

고대 철학자 칼리클레스는 플라톤의 철학 대화편 고르기아스에 등장하는 인물로, 전통적 도덕과 정의 개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도발적인 사상가다. 그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며, 인간은 본성적으로 쾌락과 힘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그의 사유는 단순한 일탈적 발언이 아니라, 고대 아테네 사회 내부의 이념적 긴장을 그대로 반영한다. 시민 중심의 민주주의가 대두되던 당시, 칼리클레스는 그것을 '약자의 도덕'이라 비웃으며, 보다 본질적이고 본능적인 인간의 욕망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기존 철학자들과 달리 ‘이성’보다는 ‘힘’을 정의의 기준으로 보고, 도덕은 강자를 억누르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다. 플라톤이 이런 칼리클레스를 고르기아스에서 주요 인물로 설정한 이유는 단순히 그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학이 반드시 직면해야 할 실전적 물음을 제기하기 위해서다. 칼리클레스는 소크라테스와의 대화를 통해 "과연 윤리는 타고난 본성 위에 세워진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합의일 뿐인가?"라는 근본 질문을 던지며, 고대 철학의 지평을 더욱 넓히는 역할을 했다. 그는 인간 본성은 욕망을 따르고, 힘과 능력을 지닌 자는 그에 걸맞은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강조한 ‘이성적 절제’와 완전히 대립되는 것으로, 고대 아테네 사회가 공유하던 윤리관에 도전장을 내민 셈이었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그 주장은 위험하거나 반도덕적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철학이 성찰의 도구라면 바로 이런 급진적 관점도 진지하게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칼리클레스는 정의와 윤리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진, 고대 철학의 문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아름다움, 수치심, 힘 . 칼리클레스 철학의 핵심

칼리클레스는 인간이 자연스러운 본성을 따를 때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산다고 믿었다. 그는 "수치심은 약자의 감정이며, 아름다움은 강자의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단지 외적 형상이 아니라, 지배와 권력을 성취하는 자의 모습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쾌락과 힘을 향해 나아가며, 이를 억압하는 도덕이나 사회 규범은 '약자의 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사유는 현대에도 익숙한 니체의 초인 사상, 혹은 사회 다윈주의적 사고와 닮아 있다. 강자가 자신의 본성을 긍정하고, 수치심 없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삶’이라는 것이다. 칼리클레스에게 있어 참된 철학은 삶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만드는 도구여야 했다.

 

플라톤의 반격, 소크라테스와 도덕의 반론

플라톤은 고르기아스 속 소크라테스를 통해 칼리클레스의 논리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는 힘이 곧 정의라는 생각은 궁극적으로 사회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으며, 진정한 힘은 욕망을 절제하고 내면의 질서를 세우는 것이라고 본다. 즉, 쾌락이 아닌 ‘덕’이 삶을 인도해야 한다는 철학이다. 소크라테스는 특히 "잘못을 저지르는 것보다 잘못을 당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으로 칼리클레스의 입장을 흔든다. 이는 고통보다 도덕적 타락이 더 큰 악이라는 윤리 사유다. 이러한 대립은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윤리적 상대주의 vs 보편주의, 자연주의 윤리 vs 덕 윤리 간의 철학적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르기아스 속 도발적 논리, 아름다움과 수치심을 함께 본 고대 철학자 칼리클레스

 

현대 사회에서 칼리클레스를 다시 본다면

칼리클레스의 철학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나 성공 지향적 가치관에서 다시 소환된다. "성공한 자가 정의다"라는 암묵적 분위기 속에서, 그의 철학은 여전히 현실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도덕이나 윤리를 따르기보다는, 성과와 결과로 인간 가치를 판단받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칼리클레스의 사유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도덕은 정말로 선한가, 아니면 사회가 만든 허구인가? 윤리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작용하는가, 아니면 힘 있는 자의 또 다른 장치인가? 이런 질문들은 단지 이론적 고민에 그치지 않고, 정치, 사회, 교육, 법 등의 여러 층위에서 반복된다. 그래서 칼리클레스는 단순한 '틀린 철학자'가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반박하고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철학적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칼리클레스의 도발은 끝났는가?

고르기아스의 마지막에서 칼리클레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침묵한다. 하지만 이 침묵은 완전한 패배가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철학적 질문의 여운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힘과 윤리는 언제나 충돌하는가? 칼리클레스는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의 철학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시대가 변화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칼리클레스의 침묵은 외면이 아니라 철학적 대화를 다음 세대로 넘긴 침묵이다. 그는 고대의 강단에서 사라졌지만, 근대의 니체, 현대의 마키아벨리적 권력 철학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도발은 정치, 윤리, 사회질서를 성찰하는 철학자들에게 언제나 출발점이자 반론의 대상이 되어왔다. 우리가 평등과 정의를 외치면서도 경쟁과 서열에 익숙해지는 현실 속에서, 칼리클레스의 주장은 불편한 진실로 작용한다. 그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과 도덕이 충돌하는 장면마다 다시 호출된다. 철학은 때때로 ‘틀림’이 아닌 ‘다름’을 마주보는 용기이며, 칼리클레스는 그 다름의 극단을 끝까지 밀어붙인 고대 철학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