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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아래 숨겨진 이야기들/심해 생물의 생존 방식

마린 스노우부터 고래 폭탄까지

by 어웨어12 2025. 4. 6.

– 심해 생물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순환되는가?

심해는 태양빛이 단 한 줄기도 닿지 않는 암흑의 세계다. 이곳에는 식물이 자랄 수 없고,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존재도 없다. 우리는 흔히 생명은 빛과 함께 시작된다고 믿지만, 심해의 생물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존해왔다. 그들은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 수 없기에, 죽음을 기다린다.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유기물, 표면에서 가라앉은 거대한 사체, 바다의 바닥에서 이루어지는 화학 반응이 바로 그들의 생명줄이다. 이 글은 그러한 심해 생물들의 식생활과 에너지 순환 시스템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바다의 또 다른 진실을 조명하고자 한다.

 

 

1. 생명의 눈, 마린 스노우(Marine Snow)

심해는 독립적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공간이다. 태양빛이 도달하지 않기에, 광합성을 통한 생명체의 순환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어둠의 세계에서 생물들은 무엇을 먹고 살아가는 것일까? 그 해답은 ‘마린 스노우(Marine Snow)’라는 이름을 가진 유기물 입자들이다. 마린 스노우는 바다 표면에서 죽은 플랑크톤, 생물의 배설물, 잘게 부서진 유기 잔해들이 뭉쳐져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서서히 바닷속 깊은 곳으로 내려오는 입자들이다. 이들은 하루에 수천 톤 이상이 바다 바닥으로 떨어지며, 심해 생물들의 가장 기본적인 먹이원이 되어준다. 이 눈 같은 유기물은 마치 눈송이처럼 조용히 내려앉지만, 심해 생명체에게는 생존을 위한 생명줄이다. 심해성 해삼, 극피동물, 스폰지류, 아메바류 등은 마린 스노우를 여과하거나 흡입하면서 에너지를 흡수하고 살아간다. 작고 단순한 생명체부터, 그들을 먹는 포식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먹이사슬의 바탕이 되는 ‘죽음의 눈’이다.

 

 

2. 움직이는 먹이 – 심해 생물의 사냥과 포식

마린 스노우만으로는 충분한 에너지를 얻기 어려운 생물들도 있다. 이들은 보다 능동적인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심해 생물들은 어둠 속에서도 생존을 위해 사냥하고, 죽은 생물을 청소하며, 약한 생물을 노리는 다양한 방식의 포식 전략을 발전시켰다. 대표적인 예가 ‘딥시 앵글러피시(흉악돔)’다. 이 생물은 머리 위에 달린 생체발광 기관을 이용해 어둠 속에서 먹이를 유인한다. 약한 생물이 이 빛에 끌려 다가오면, 순간적으로 덮쳐서 잡아먹는다. 또한 심해 바닥에는 청소 생물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바닥에 축적된 유기물이나 죽은 생물을 분해하며 살아간다. 일부 갑각류나 해삼류는 미세한 유기 입자를 흡입해 섭취하고, 썩어가는 생물의 잔해에서도 생명을 끌어낸다. 더 큰 포식자들도 있다. 심해 오징어나 대형 장어류는 날카로운 감각을 이용해 빠르게 사냥하며, 때로는 같은 종의 다른 개체를 공격하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포식자와 먹이의 경계가 모호하며, 언제든 먹는 자가 먹히는 자가 될 수 있다.

 

 

3. 고래 폭탄 – 생명의 축제가 되는 거대한 사체

심해 생태계에서 가장 강렬하고도 신비로운 먹이 공급 이벤트는 바로 ‘고래 폭탄(Whale Fall)’이다. 고래가 수명을 다해 바다 위에서 죽고, 그 거대한 사체가 천천히 심해로 가라앉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태계 변화를 만든다. 이 고래 한 마리는 수백 종의 생물에게 수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먹이와 거처를 제공하는 자원이 된다.

이 현상은 다음과 같은 4단계로 생태계에 영향을 준다:

  1. 낙하 단계: 고래의 사체가 서서히 가라앉는다. 이 단계에서 이미 일부 생물은 사체에 달라붙기 시작한다.
  2. 해체 단계: 상어와 대형 어류가 사체의 살을 뜯어 먹으며, 뼈를 제외한 대부분의 조직이 제거된다.
  3. 해골화 단계: 남은 뼈와 지방을 박테리아와 해양 벌레들이 분해하며, 미세한 유기물이 방출된다.
  4. 화학합성 단계: 고래의 뼈 속에서 방출된 황과 같은 화학물질을 기반으로 화학합성 박테리아가 증식하고, 이 박테리아를 먹는 생물이 다시 등장하면서 새로운 먹이 사슬이 형성된다.

이 모든 과정은 심해에서 단절된 듯 보였던 생명 순환의 거대한 고리를 만들어내며, 하나의 고래가 수천 마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핵심 생태 자원으로 변모하게 만든다.

 

 


마린 스노우부터 고래 폭탄까지


 

 

4. 느리지만 끊기지 않는 연결 – 심해 생태계의 순환 구조

심해는 완전히 닫힌 생태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표면의 생태계와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표면에서 시작된 생명은 결국 심해로 떨어지고, 심해에서 분해된 영양소는 다시 해류를 통해 표면으로 순환되며 새로운 생명을 만든다.

이러한 순환은 크게 세 가지 경로로 이루어진다:

  • 표면 → 심해: 마린 스노우, 동물 사체, 고래 낙하 등
  • 심해 → 표면: 깊은 해류를 따라 이동한 미네랄과 영양소가 표면 해양 생태계에 공급됨
  • 자체 생태계 순환: 특히 열수구 주변에는 화학합성을 기반으로 한 독립 생태계가 존재한다. 이곳에서는 태양 없이도 생물이 살아가며, 지구 내부 에너지에 의존한 순환 구조가 작동한다.

결국, 심해 생태계는 단절이 아닌 느리고 깊은 순환 시스템의 일부다. 생명의 모든 형태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은 단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바다의 밑바닥은 죽음이 아닌, ‘순환의 시작점’  바닥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원리

심해는 죽음의 세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죽음을 자양분으로 삼는 생명의 순환 고리’다. 바다 표면에서 사라진 것들이 아래에서는 다시 생명을 탄생시킨다. 부서진 플랑크톤은 세균의 먹이가 되고, 고래의 사체는 수천 마리 생물들의 생명선이 되며, 작은 미생물의 발광은 또 다른 생명을 유인해 포식자의 배를 채운다. 이곳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순환의 시작이며, ‘사라짐’은 소멸이 아닌 전환이다. 심해 생물들은 그렇게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먹고, 먹이며, 생명을 이어간다. 지표에서는 쓰레기이자 잔해로 여겨지는 것들이 심해에서는 에너지의 기둥이 되고, 생명의 원천이 된다. 그리고 그 느린 순환의 리듬은,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한 생명의 본질을 고요하게 증명해낸다.

 

 

▶ 다음 편 예고

📘 5편. “열수구 근처 생태계 – 태양 없이 살아가는 생물들”

→ 태양 없이도 살아가는 생명, 화학합성과 외계 생명체 가능성을 파헤친다!